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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나누다 <6> 정선희 에스큐브디자인랩 대표

계획대로 살기보단 맘껏 모험 … 성공적 인생도 디자인하다



- 좋은 디자이너 되고픈 마음에 안정된 길 버리고 유학 도전

- 디자인에 대한 식견 넓혀 귀국, ‘손잡이 없는 냉장고’ 히트 뒤 돈 대신 NGO서의 삶 선택해

- 50대 되어 돌아온 고향 부산에서 디자인 컨설팅 시작


서비스 디자인은 눈에 보이는 제품뿐만 아니라 의료·정책 등 무형의 서비스까지 디자인 하는 분야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비즈니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꼽힌다. 서울에서는 수요가 많은데 부산 울산 경남에서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다. 카이스트(산업디자인)·하버드대(건축디자인 석사)를 거쳐 삼성전자 수석 디자이너와 유니스트 디자인·인간공학부 학부장을 역임한 디자인 거장이 부산 최초의 서비스 디자인 컨설팅기업을 세워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에스큐브디자인랩 정선희(53) 대표. 그는 냉장고에 손잡이를 없앤 디자인 혁신을 이끈 인물이다. 고향에서 제2의 인생을 디자인하고 있는 정 대표는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멋지다”고 말한다. 최근 부산 동구 초량동 사무실에서 만나 청년과 나누고픈 경험을 들었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지 마라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정 대표는 1991년 대우전자 제품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덕에 성과가 날 무렵 정 대표는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하고 유학을 결심했다. “정말 순수하게 좋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넉넉한 형편이 아니어서 국비 유학생에 도전했습니다. 유학생 선발 시험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아 퇴사를 하고 제대로 준비하려 했더니 주위 반대가 엄청났죠. 다들 모험을 응원하는 대신 ‘안정적인 삶을 살라. 결혼도 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스스로 따져 봤더니 지금은 버는 것보다 투자할 때다 싶었어요. 혹시 유학생 시험에서 탈락해도 한 번 부끄러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 대표는 “시험을 준비하던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회상했다. 결과에 상관없이 성장을 위한 시도를 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즐기는 자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 했던가.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된 것은 물론 디자인계에서 독보적 입지를 굳힌 하버드 건축대학원에 합격했다. “영어도 부족한데 건축 디자인은 생소했어요. 과제는 또 어찌나 많던지. 매일 새벽 5시까지 공부하고 잠깐 집에 들어가 눈을 붙이는 생활을 2년 넘게 했어요. 너무 힘들었지만 다행히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냉장고 손잡이를 없애다

하버드에서 석사를 마친 그는 2년간 보스턴에서 건축 디자이너로 일했다. 출발점인 제품 디자인이 그리울 무렵 삼성전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2001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디자이너에 대한 자신의 시각이 완전히 달라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용자 중심적 사고를 기본으로 하는 디자이너는 제품 스타일링뿐만 아니라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활약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삼성전자 디자인 부서 최초로 전략팀을 만든 이유다. 또한 제품 디

자인을 하기 전 선행 연구를 해 냉장고의 돌출식 손잡이를 없애는 혁신(사진)을 이끌었다. “냉장고를 고급가구처럼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고급가구는 대부분 핸들이 없으니 냉장고 핸들도 없애자고 제안했더니 초기에는 반발이 엄청났죠. 끝내 설득해 시장에 내놓자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수석디자이너에 오른 정 대표는 2010년 유니스트 디자인·인간공학부 학부장을 맡아 디자인 방법론 중 하나인 UX(사용자 경험)서비스를 전공 분야로 키웠다.


‘잘 나가던’ 정 대표는 갑자기 한국 생활을 모두 정리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2014년 미얀마에 갔다. 마음 한쪽에 남아 있던 ‘남을 위한 삶’을 실천할 때라 여겼기 때문이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국제적인 디자인 NGO에서 활약했다. 가난한 농부들을 위한 휴대폰 앱 서비스 디자인을 맡아 현장을 누볐다. “봉사와 헌신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일이 바빠지니 구조적으로 이타적인 삶이 불가능했어요. 10년간 이대로 커리어를 쌓는다면 사회적 지위는 어디까지 오르겠지만 ‘과연 나는 행복할까’는 회의가 들더군요. 결국 하루빨리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하는 게 후회 없겠다 싶었어요. 남을 위하는 일은 먼저 하늘나라로 간 남동생의 꿈이기도 했고요.”



계획대로 되지 않아 멋지다

2017년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는 다시 귀국했다. 계획에는 전혀 없던 일이었다. 모든 가능성이 열린 상황에서 그는 UX연구와 서비스디자인을 제공하는 컨설팅 기업 에스큐브 디자인 랩을 부산에 차렸다. 제조업 기반인 부산에서는 서비스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적다는 점이 오히려 그를 부산으로 불러들이는 계기가 됐다. 부산이 국내 디자인 인력의 38%를 배출하는데도 그들을 수용할 디자인 시장이 없는 것도 아쉬웠다.


“아직은 수요가 없지만 중요한 분야기 때문에 알리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부산에서는 노인층을 위한 의료서비스나 원도심 정책서비스 등 활용될 분야가 많아요. 지역 인재들도 회사에 다수 들어와 있는데 함께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다양하고 도전적인 삶을 살아온 그는 청년들에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괴로운 것이 아니라 멋진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늘 고민했지만 하버드에 가거나, 다른 나라 사람들을 돕고, 50대에 부산에서 창업할 것이란 상상은 못 했어요. 의미 있는 삶, 제게 맞는 삶이 뭔지를 고민하다 보니 계획한 삶은 아니지만 멋진 일들을 만난 것 같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배우고 경험하고 성장했다면 괜찮으니 마음껏 모험하고 시도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김민정 기자 제작지원 :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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